나의 산행기

대청봉을 가다 (20080607)

pc100 2008. 6. 8. 20:43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대청봉에 가기로 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같이 갈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길래 늘 메일을 보내오던 산악회에 신청을 했다.  그 전에 여부장님이 무려 서울을 둘러싼 4개 산을

종주하는 코스를 제안했지만 도저히 자신도 없고 애가 혼자 있는 날이라 엄두를 못내고.

못마땅해 하는 남편을 뒤로 하고 짐챙겨서 저녁 9시에 집에서 나선다.

이런 날 꼭 버스는 빨리온다. 양재역에 도착하니 겨우 9시 40분이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산악반 팜플렛 보다가 아침 간식으로 먹을까하고 도넛 2개를 샀다.

확인전화 오고 버스가 왔다. 이번에도 연합이다. 제일 앞 좌석의 등반대장 옆자리다.

다음 정차지에서 탑승할 사람들 체크하느라 계속 전화하고 하느라 시끄럽다.

등산지도에 형광색 펜으로 칠을 하는데 안경을 벗고 더듬대길래 도와주었다.

머리만 대면 자는 내가 도통 잠을 잘 수가 없다. 많이 긴장했었나보다.

 

등산 코스와 도착 시간을 적은 지도이다.

 

여부장이 공룡능선을 들어가라고 문자를 보내주었지만 사실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옆에 앉았단

이유로 등반대장이 맨 꽁찌에서 천천히 가라고 계속 잡는다. 안내할 때도 7시 30분까지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한 사람만 공룡능선 들어가라고 웬만한 사람은 처음에 공룡 못간다고 얘기를 해서

기를 죽인다. 

새벽 2시 30분 오색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얼굴도 한번 안본 일행들은 벌써 내빼버리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2년전에 한번 쓰고

버림 받았던 랜턴이 점점 기운을 잃어간다. 할 수 없이 등반대장 바로 앞에 서서 그 빛에 의지해

올라갔다.

오색에서 대청봉을 가는 길은 정말 옆으로 5도 정도도 벗어나지 않고 일직선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오전 4시가 지나자 사방이 희뿌옇게 되면서 랜턴 없이도 걸을 수가 있었다. 조금 속도를 내본다.

가이드는 더 빠르다. 늘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전문가들인가 생각해 본다.

정말 낮이라면 쳐다보는 것만으로 질려서 등산을 하지 못했을 거란 느낌이 들 정도로

가파른 길을 계속 올라간다. 설악폭포도 소리만 듣고 지나가고 30계단 세다가

40계단 세다가 퍼져 앉아서 물을 마시다 또 오르고 또 오른다.

고도가 올라가면서 간간히 비도 뿌리고 안개가 짙게 퍼져있다.

5시 40분이다.
대청봉은 구름과 강풍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다 잠깐 searchlight 처럼 잠깐 붉은 기운을 구름 속에

보여주고 바로 구름으로 가려 버린다.  대청에서 이정도 날씨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잽싸게 등반대장에게 사진 한장 찍어달라고 하고 내뺀다.

그런데 옆의 이 아저씨는 누구야?  

 

 

 

중청 대피소에서 간신히 일행 두사람을 발견했다. 등반대장조차 일행들이 왔는지 갔는지

파악이 안되는지 조금 기다려보자고 한다.  이참에 지하에 있는 대피소에 들어가 보았다.

나무로 된 2층 침대에 사람들이 자고 있다. 빌린 담요를 쓰고 있는 사람, 침낭에 들어가 있는 사람,

침낭에 들어가 계단 아래 쪼그리고 있는 사람, 종으로 2명이 누울 자리에 횡으로 4명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 그리고 땀냄새...

예정대로라면 중청 삼거리에서 한계령에서 올라오는 팀이랑 만나는 시간이라는데 아무도 안보인다.

그래도 내리 꽂는 듯한 계단과 돌길을 걷는다.

신선대가 바라보이는 바위에 앉아 사진 한장 찍고 간식 먹고 ...

 한한계령에서 올라온 팀의 선두가 지나간다. 

내 배낭의 2배나 되는 배낭에 침낭 매달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앞뒤에 많다.

산에도 사람이 참 많다. 젊은 사람도 많고 여성도 많고, 연세 지긋하신 분들도 많다. 

짐의 크기도 대동소이하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만이 올 수 있는 곳이다.

희운각 대피소까지 또 내려왔다. 비교적 계단이 많고 사람도 많아서 밀리듯 내려오느라

힘든 줄도 모른다.

7시 10분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했다. 사람으로 넘쳐나서 계곡을 점령하고 밥을 해먹는 사람들이 많다.

앗! 그런데 밥을 안판다. 햇반,물,부탄가스만 판다.  가진건 도넛츠 2개랑 간식뿐인데.

공룡능선을 포기하고 등반대장이랑 도넛 한개씩 나눠먹는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7시10분이다. 30분까지 도착하면 공룡가도 된다고 했는데...

한번 본 얼굴이라도 있나 찾아봐도 아무도 없다.  해가 나서 썬크림을 바르는데 뭐가 얼굴에

거칠거칠한 것이 밀린다. 그래도 신경쓰지 않고 바른다.

놀면 뭐해!

공룡능선으로 출발하다.  처음부터 또 오르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름이 능선인데 올라가면

좀 쉽겠지 생각해본다.  은영이가 생각하는 능선은 ~~ (올라갔다 내려갔다)

역시 무식하면 용감한 거였다.

올라갈 땐 7~80도로 올라간다. 거대한 바위들이 오른쪽에 있는거는 왼쪽으로 도는 거고

앞에 있으면 정면으로 가는 거다.

점점 배가 고파온다. 일행이 없어서 마음은 조급하고 시계가 있어도 새벽 2시부터 시작한 터라

시간 감각이 없다.

쉬지도 못하고 계속 앞사람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 여유있게 걷는 아저씨 발견!

말을 걸어본다.  울산에서 온 사람이다. 2-3년에 한번씩 온단다. 이것저것 설명해 준다.

쫄쫄 따라걸어간다. 그러다가 먹는 얘기 나와서 아침 굶었다고 이실직고하고 아저씨 비상식량인

떡과 도라지주를 얻어 먹는다.  ㅋㅋ. 은영이 뻔치 많이 늘었다.

1275봉을 올라오니 아저씨 돗자리 깔고 누우신다.

나는 쉴 수 없었다. 열심히 다시 앞사람을 쫓아서 걷는다.

그러다 사진 한장을 찍어야지 싶어서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서 세장을 찍었다.

 

  

 

 

그런데 아까 희운각 대피소에서 느긋하게 밥먹던 아저씨들이 먼저 와 있네. 참!

아는 척 하고 또 쫄쫄 따라 걸어간다.

이번에는 대구에서 온 아저씨들이다. 이런 저런 말끝에 고령댁으로 낙찰...

마등령에서 백담사로 간다고 마등령 가기 전에 퍼져 앉아서 소세지, 고추, 오이, 토마토에다가

오미자술을 얻어먹는다. 주는 것마다 다 이상한것만 준다고 하면서 술에도 마약 탔다고 하지만

끄덕할 내가 아니다.  다 먹고 감사 인사하고 마등령에서 헤어진다.

11시! 이제 비선대 표지를 보고 열심히 걷는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끝없는 내리막길이다. 황정산과 가지산, 덕유산의 악몽을 합친 것만큼 어렵다.

남들 한시간이면 된다 하던데 걸어도 걸어도 500m 밖에 줄지를 않는다.

설악동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헉헉 대면서 올라온다. 나는 삐질삐질 내려간다.

무릎의 관절이 아픈게 아니라 무릎 아래위의 근육이 심하게 압박을 받는다.

한 계단에 왼발 내리고 오른발 내리는 방식으로 내려가니 남들 2배는 걸린다.

지나가던 사람이 왜 스틱 안쓰냐면서 충고해주고 간다.

꺼내들어도 웬지 어색해서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해보는데 러시아 병정처럼 뻗뻗하다.

다시 그 사람을 만난다.  이번에는 사용법을 알려준다. ㅋㅋㅋ

비선대가 가까워 오는지 암벽등반 훈련하는 사람들이 큰 바위에 많다.

특징은 깡마른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게다가 한팀에 젊고 예쁜 처자들이 한명씩 있다는거.

경사가 더 급해졌다. 아이구...

뱃속에서 꾸르릉 소리가 계속 들리가 다리가 풀린다.

한번 주저 앉아서 쵸코볼을 2개 찾아서 먹는다. 일어서기가 너무 힘든다.

내 자신을 스스로 칭찬해 가면서 한걸음한걸음 또 내려간다.

드디어 비선대다.  햇살이 따갑다. 사람들이 물가에서 앉고 눕고 하고 있다.

내가 꼬래비인거 같아 쉬지도 않도 또 걸어간다.

첫번째 상가에서 설레임을 무려 1,700원이나 주고 사먹었다.

아깝다는 생각보다 빨리 녹지 않는게 짜증이 난다.

비선대에서 식당까지도 멀게 느껴진다.

14:00 드디어 식당이다.

아까 열심히 스틱 얘기했던 사람이 같이 온 사람들이었네.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소주를 나눠먹고 또 동동주를 나눠먹는다.

그래도 시원한게 계속 먹고 싶다. 샤워실에서 발을 닦고 12시간만에 양치도 해본다.

버스를 타고 C지구 주차장까지 가서 캔맥주를 사먹었다.  시원한 생맥주 한잔 했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술친구한테 전화를 했지만 '오늘은 안돼!' 하길래 포기.

돌아오는 차안에서도 잠이 쉽사리 오질 않는다. 너무 피곤했나 보다!

등반대장이 이번처럼 공룡에 많이 들어간 적도 없고 그러고도 한명도 안 늦은 적도

없다고 한다.

이리하여 대청봉-공룡능선을 댕겨왔다. 지금은 아그그그 하면서 일어나고 걷고 한다.

한 3일은 더 고생해야겠지만 뿌듯하다...

끊임없이 올라야 하는 대청봉도 힘겨웠지만 높은 설악의 어느 곳에 오르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공룡능선을 걷는 것은 참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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